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명문학교 개성고총동창회입니다.

자유게시판

직전 사무국장 이종철(65회) 사퇴의 변【1】
 제목 :  직전 사무국장 이종철(65회) 사퇴의 변【1】
작성자 : 이종철(65) / 2013-08-09

직전 사무국장 이종철(65회) 사퇴의 변【1】

 

동창회 사무국 부차장들의 동창회 사랑에 대한 충행과 충언 그리고 65회 동기회 부터 79회 동기회에 이르는 젊은 백양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래서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으로서 그들에게 변명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 변명을 한다는 것이 무척 서글프고, 아프고, 답답하다.

사무국장직을 사퇴하기 전 지난 3월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치와 순리 그리고 관습과 관행을 전면 부정하는 독선에 맞서야 했었던 3월,

그리고 역대 집행부의 운영을 부정하면서 잘못하였다는 논리에 대항했던 3월,

 

충격과 혼란 속에 몸과 마음은 다스리지 못하고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갑갑하고, 답답함에 미칠 것 같았던 3월, 다 지나간 과거일 뿐인데....

 

본인이 생각하는 동창회 사무국은 3만 동문들의 심부름꾼으로 한결 같은 마음으로 동문들을 대하고, 항상 낮은 자세로 섬기며, 소중한 기부와 협찬에 감사하며, 한 푼이라도 아껴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며, 봉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아니었다. 봉사가 아니고 나는 동창회의 녹(祿)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비참해지면서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라고 자책을 하게 되었다.

 

-2년 전, 사무국장 임명 과정과 사퇴 전까지 수행과정

2년 전, 당시 류대희(59회) 사무국장께서 개인적 사유로 사퇴하면서 사무국장 제의가 들어왔으나 거절하였다. 이어 선후배 몇 분이 지금하고 있는 인쇄업을 병행하면서 하면 되니 한 번 해 봐라고 건의하였으나 또다시 거절하였다.

 

어느 날, 이재곤(55회)회장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동창회 정서와 선후배 가교역할의 적임자라고 생각하니 사무국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에 두 차례 거절하다가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 현재 사무차장이 공석인지라 충원을 해준다는 약속과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상근으로 10여 년 봉사만 했었지 실무는 알지 못해 걱정이 앞섰다.

보름이 지나 사무차장직을 수행할 동문의 이력서를 가지고 회장님께 충원을 요청하니,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동창회와 장학회 업무와 살림살이에 대해 한 달만 더 공부하고 난 뒤에 다시 얘기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한 달이 지났다.

지난해부터 동창회 수입예산이 지출예산보다 적었다.

장학회와 달리 동창회는 상반기에 실시하는 행사가 많아 동문들의 기부 및 찬조금이 들어오기 전에 행사비용이 지출되는 관계로 애로를 느끼면서 동문들의 소중한 기부에 감사의 마음을 다시금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무간사에게 사무차장의 충원이 어려울 것 같으니 둘이서 한 번 해보자고 협조를 구하니 난색을 표현하였다.

 

수일간 고심한 끝에 인쇄업을 병행하는 것은 사무국장직을 원만히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내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쇄업을 정리할 것을 마음먹고, 사무간사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였다. 어차피 사무국장을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동창사회에 잘했다는 칭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잘못한다는 욕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다른 삶의 먹거리를 위한 일거리 있을 것이다 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매년 치러지는 동창회와 장학회 행사와 업무는 무난히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원 확충을 위한 방안과 79회 이후 기수들의 동기회 결성이 선급과제였다.

51회부터 매년 바뀌는 동창회장 임기로 인해 동창회 일선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기수와 동문들이 상당히 증가하는 것이 문제였다. (80회부터 아직 동기회가 결성되지 않았는데)

 

동창회와 장학회는 동문들의 기부와 찬조로 영위하는 단체이다. 그래도 80회 이전에 졸업한 기수들의 삶이 나은 편이라 손을 벌릴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찬조 가능자를 물색하여 리스트를 만들어 재원 확충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여 도전하고자 하였다.

 

지난날 졸업과 동시에 은행과 기업체에 취직하여, 동기회 결성은 물론 동창회 참여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기수들이 즐비할 때는 동창회 앞날은 밝았다. 그렇지만 시대의 변화로 상업학교 퇴보의 시점에 봉착한 후배기수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여 동분서주하며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선 상업학교와 인문학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백양청년회(88회 이후 기수)를 활성화시켜 먼 훗날 자연스럽게 동창회 계보를 이어 받을 수 있는 기반구축에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어 인문학교를 졸업한 95회 기수의 선두로 백양3세기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민족학교의 옛 명성을 승계하여 향후 자부심과 긍지로 동창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성해야 하는 의무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정하게 매년 치러지는 행사보다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이 더 필요하였고, 앞으로의 백년을 이어갈 수 있는 영원한 터전을 구축키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 입안이 절실하였다. 안타깝게도 동창회 창립100주년을 맞아 바쁘다는 이유로 체계적인 기획과 입안을 완성하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다.

 

아울러 2012년 한해는 동창회 창립100주년 행사 기획과 (사)부산항일학생의거 기념사업회 법인화 작업에 미련하나마 대한민국 학교 역사상 우뚝 솟은 금자탑을 세워 백양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 결말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고, 또한 동문들에게 죄송한 마음 그지없다.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답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