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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가을의 전설
 제목 :  가을의 전설
작성자 : 김영봉(57) / 2011-09-29

 
 
 
 
 
 
<화개월령 花開月令)에 보면 7월에는 목근(木槿)·백일홍·옥잠화·전추라·

금전화·석죽꽃이 피며, 8월에는 월계·백일홍·전추라·금전화·석죽이 피고,

9월에는 전추라·석죽·사계· 조개황(早開黃)·승금황(勝金黃) 등이 핀다고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지만 역시 가을꽃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무궁화

를 추화(秋華)라고도 하는것은 이 꽃이 가을의 맑은 하늘에 어울린다는

것을  뜻함이다.
감나무는  아름다운 단풍과 수없이 열리는 열매로 우리

나라 마을의 가을 풍경을 대표한다.주로 남부 지방에 많으며, 마을 나무

로  심어져  열매의  식용 가치 외에  아름다운 풍치로서의  가치도 크다.


감을  깎아  말리는 일과  길가 곶감 장수의 행렬 등은 우리 나라 가을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감을 딸 때에는 나무에 몇 개쯤은 남겨놓고 따는 습

속이 있는데, 이것은 까마귀와 까치를 위한 것으로, 홍시가 된뒤 새들이

쪼아먹는 풍경에서 우리 국민의 자연애호정신을 엿볼수 있다.
“오동나무

의 잎이 떨어져  가을이 온 것을 알게 된다.”는 시의 한 구절은 쓸쓸하게

저물어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오동나무는 목재로도 좋지만 정원수

로도 좋다.  오동나무는  잎 뒤에 갈색 털이, 참오동나무는 흰 털이 있어

구별되는데, 참오동나무는 울릉도에 많이 자라고 있어 유명하다.
단풍나

무는 우리나라 가을산의 대표적인 나무로,설악산·내장산의 단풍이 특히

유명하다. 단풍나무류에는  당단풍나무·신나무· 복자기나무· 산겨릅나무·

고로쇠나무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가을철이면  단풍놀이를 즐기게

되는데, 봄에는 철쭉제, 가을에는 단풍제가 올려지기도 한다.
 
 

가을 단풍을 장식하는 수종에는 단풍나무류 외에도 참나무류·옻나무·붉

나무·포플라류·화살나무·자작나무 등 그 종류가 많은데, 각기  나름 대로

의 색깔로 단장을 한다.
또한, 우리 나라 가을을 상징하는 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큰 나무이다.그 가운

데 장수하는 것은  대개 암나무로서  은행이 많이 열려 식료품 으로서의

구실이 크다.
산기슭과 밭둑, 그리고  마을 주변 어디에나 서식하는 밤나

무가 그 탐스러운 아람이 벌어질  즈음에는  가을이 한껏 무르익어 간다.

 

광택 있는 진한 갈색의 밤알은 가을의 빛깔을 머금은, 우리 민족이 사랑

하는 과일이다.
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밤을 땅 속에 묻어 저장하는데 이

것은 제수를 준비함이었다. 송나라 사신이 우리 나라에와서 여름철에도

밤이 있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밤의 저장법을 물었더니, 관원이 대

답하기를 “도기에 밤을 담아 땅 속에 묻어두면 한 해가 지나도 손상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잣나무는 학명이  피누스 코라이엔시

스(Pinus koraiensis)로 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적인 나무이고, 그  열매를

 

중국  사람들은  해송자(海松子)라  불러 숭상하는 식료품으로 취급했다.

가을이 오면 산 속으로 들어가 잣송이를 따 모으고, 이것을 마당 구석에

쌓아 말린 뒤 발로 밟아 문지르면 잣알이 튀어나온다 .
뿐만 아니라 잣나

무는 그 잎의 푸름과 굳센 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시가(詩歌)의 소

재로 되기도 하였고,변치않는 절개의 나무로 국민들의 심성에 전해졌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서는 무궁화 외에 동백나무·차나무·싸리가 있

다. 우리 나라 남쪽 해안이나 도서 지방에는 동백나무가 많은데, 꽃 피는

 

시기에 있어서 개체변이가 많다.  특히 가을에 피는  동백나무를 추백(秋

柏)이라 불렀다.
가을철  우리 나라의 산과 들은 단풍과  열매로 장식되는

데, 아름다운 열매에는  청미래·작살나무·찔레·매자나무·산수유나무·대추

나무·산사나무·백당나무·석류나무 등  그 수가 대단히 많다.  이러한 열매

가 산과 들을 물들일 때, 갈대·억새 등은 독특한 꽃을 피우면서 가을의풍

치를 더해준다.
이 때쯤이면  뜰에는 붉은 맨드라미의 꽃이 한창 피어 가

는데, “오자오자 옻나무 가자가자  감나무 김치가지  꽃가지 맨드라미 봉

선화”라는 동요가 불려지기도 한다.  키 큰 맨드라미는 바람·비에 약하므

로 나뭇가지를  세워서 보호해 주기도 한다.
국화는 가을과는 뗄 수 없는

 

꽃이다. 시가나 그림의  소재로 이루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국화주

는 별미로  알려졌다. 무·배추가 뽑히고 부인들이 김장 준비를 서두를 때

가 되면 기러기 떼들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마당에는 새 창호지로 단장된

 

문짝이  가을 햇볕을 받아  팽팽하게 마르고, 문틀 손잡이 부근에는 국화

꽃잎·대나무잎·단풍잎 같은 여러 가지 꽃잎들이 창호지 사이에 수놓아지

며, 초가 지붕을 덮기 위한 이엉이 엮어져  따뜻하고 풍요한 겨울 준비에

접어든다.

 

 

이르듯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봉하마을의 황금빛 들녁에 <가을의 전설>

이 나타났다.
밀집모자를 쓴채 환하게 미소를 짖는 노대통령, <내마음 속

 

대통령>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벼가 익어갈수록 대통령의미소와 글짜는

 

더욱 짙게 우리들의  속 마음을  파고 들것이다.지난 9/27일 불연듯 봉하

마을을 다녀왔다. 5/23일 선후배동문들과 노전대통령 서거2주년 추모식

다녀온후 4개월만에 홀로 다시 가게 된것이다.봉하마을은 봉화(火)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봉하(下)마을 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

해지고 있다.

 

 

 오전 10시경 진영  버스터미널에 도착 , 봉하 마을가는 버스를 기다리길

20여분... 작년 까지만해도 쉴사이없이,
붐비든  터미널은 허전하기 이를

이를때없고, 인근 튀김집 에 문의하니 봉하로의 버스는 2시간 30분 간격

이라한다.마침 호남
에서 왔다는  어느 노(老 )부부와  택시를 대절 합승

하여, 봉하로 향 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는 강원도 에서온 관광 버스 2대

와  이곳을 보러온 사람들이  드문 드믄 보였다.
구면인  도로변  가계의

아저씨를  만나보니, 요즘은  평일  약 300명.주말 2,000명  정도라 하여,

2년전 그날에 비하면, 너무한적하고 쓸쓸한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저씨

는 이럴게 찾아주는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  한다고한다.  어느 역대 

 

대통령이 퇴임, 서거후 국민들이 이렇게 찾아준적이 있는가 ... 라며  말

문을 삼킨다.

 

 

대한민국  역사에  잊혀 지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인  김해 봉하 마을 ...

현재 약 40여 가구 120여명의 농민들이 조용히 살고 있는 아주 전형적인

 

시골의 작은 마을인 이곳 봉하 마을...이 마을에서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인  노무현이 태어나고 ,숨져 묻혀 있는 환희와 비련의 마을이기도 하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

교와 중학교는 진영읍에 있는 학교를 1시간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고시준비를 하면서 훗날  영부인이 되는 권양숙  여사를 만

나 사랑을 키운 곳도 바로 이곳 마을이다. 노 대통령은 또
2008년 청와대

에서 퇴임 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이곳으로 아름다운 귀향을 했다. 그

 

후, 그는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친환경농업을 시작했고  이곳 마을을

 

찾는 전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체험 발표를 하면서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았던 곳이었다.

 

 

먼저 <대통령의 생가(生家)>가 보인다. 노 대통령이 서거한 그해 2009년

 

9월 복원하여  현재  공개되고  있는  생가는  시골의  전형적 초가(草家)

이다. 이곳은 노 대통령이 태어나 8세까지 살았던  집이라 한다. 
  생가는

 

전통적인 시골 초가집 형태로 약 11평 규모의 본채에 방 2칸과 부엌이 있

었고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 화장실이 있었으며  담벼락에는 푸른 수풀

들이 아름다움을 연출했고 그 밑으로는 가지, 고추, 호박 등 야채들이 탐

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이어  발길을  묘역으로 돌렸다. 멀리 바라보니  추모객은 아무도 없었고

 

묘역을 지키는 의경 2명과 우측에는 대형 태극기만 펄럭이고 있었다. 묘

역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이름은 수반이라 했고 수정같이 맑은

 

물 속에는  깨끗한  조약돌들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묘역에 들어 가기전

 

마음가짐을 정돈하라는 뜻으로  마음을 비추는 거울같이 보였다. 그리고

 

발 아래로 눈길을 끌게 하는 수많은 박석(박혀있는 돌)들...  이름하여 수

많은 추모객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석인데 <국민참여 박석>이라 한다.

 

노 대통령을 기리는 추모의 글이 새겨진 15,000개의 4각 돌들_.  이 돌을

 

기부한 18,000여 국민의 애틋한 애도의 마음이 담겨있는 그 수많은 돌을

 

볼 때 그 자체가 하나의 대형 추모비석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묘역의 애도의 돌은 세계에서도 이곳 봉하 묘역이 처음이라는 할수있다.

너럭바위의 대통령 비석 앞에서  충청도에서 왔다는 어느 아주머니둘이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잠시후 그 연유를 묻자 그는 “대통령의

 

묘역이 너무 초라했고 또 주변의 시설물을 볼때 황량한 모습들이 너무도

 

한심했다”면서  “그렇게도  모든 권위의식을 버리고 오직 국민을 위해 일

 

했고 퇴임 후에는  편하고 호화롭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버리고 자신의 고

향을 찾아온 한 나라의 대통령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돌속

 

에 갇혀 있는 모습에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고 말한다. 쓸쓸한 주변의 환

경이 오늘따라  더욱 감정을 복받치게 한다. 

 

 

묘역을 뒤로하고< 대통령의 길>이란 팻말 아래에서 부엉이 바위를 올려

보며, 당시 많은 고뇌에 빠져있었을
노대통령을 생각해보며,정토원 으로

발길을 향했다.  노란색의  바람개비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억

의 시선을 주고 있다. 
 불과 해발 140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 아

래를  내려다보니  친환경 생태의 농사를 짓는 평화스런 봉하 들판과 '화

포천'이 어우러진 봉하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포천은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내려와 직접 ‘화포천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여 습지 생태를 살피

기 위해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로 자주 다녔던 길이다. 다양한 습지의 식

물과 곤충, 동물들이 살고 있고 갖가지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유명

한 곳이다  묘역에서 약 700m 거리의 정토원 까지 오르는 이 길을 '노무

현재단'에서 지난 5월 16일에<대통령의 길>로 명명하여 많은 사람들을

오르게 하고 있는데 이날 이 길을 오르는 동안에는 늦더위  탓으로 등에

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노 대통령은 평소에 봉하를 찾는 전국의 사람

들과 이 길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대통령의 길> 에는 언제심었는지 새빨간 꽃무릇이  아름답게 활짝피어

 

있어 인간사의 고난과 환희를 맛볼수있는 길이기도 하였다.   잠시 후 정

토원에 도착, 수광전(壽光殿)법당 안을 살펴보니 우측에는 김대중, 노무

현 두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어, 전임과 후임의 두 지도자

가 저승에서도 다정히 지내고 있는 듯 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정토원

 

쉼터에서 노대통령 퇴임후인 2008년3월 이곳 봉하에서 묘목을1,000그루

심었다는 무료 제공 장군차(將軍茶)를  한잔하고, 마음을 추린뒤 사자 바

위로  향하였다.
나무계단을 오르며, 정상에오르니 , 멀리 황금빛  들판에

는 <가을의 전설> 이  뚜렸이  보인다.
또한  기차길,  화포천,  봄하마을

본산공단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컷> 하러   다소  시간을  지나다 보니

간간히 한두명의 방문객들이 서서 내려보곤 한다.
이곳 정상에는 도착때

부터  검은색의 20대 초반 한 여인이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먼발취

를 향해 고민을가득 심은채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으로  올라가길 10분

정도 지나니, 자유당정권의 부패와  독재가 기승을 부리든 1959년 불


학도  31명이 농촌발전에 대한 기원을 담아 봉안한
<호미든 관음상>이

보이며 ,젊은 두부부가 정성스레 절을 올리고있었다.
이곳 불상은 봉하

마을과  김해평야를  내려다 보며  우뚝 서 있다.
낙동강 굽이쳐 흐르며 

적시는 들판 양편에는  너울  너울  날아가는 산새와 둥지를 튼  인간사


가   한눈에  보이며 ,  저   멀리  무척산 (無隻山, 703m) 이  아른  거린다.

 

 

다시 정토원을 거쳐 내려오는 길에는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여래

상 불상으로 추정하는 마애여래좌불상(경남 유형문화재 제40호)가 길모

퉁이  오른쪽  부엉이 바위 밑에 자리하고있다.
 이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조각된 앉아 있는 석불(石佛坐像)로  발견당시 산중턱 바위틈에 끼여 옆

으로 누워 있었다. 양손과 왼쪽 어깨부분이 훼손되었으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불상의  머리부분은 민머리(素髮)에 상투(肉?)모양

이 크게 표현되었는데, 목에는 3개의 주름(三道) 흔적이 보인다. 코와 입

은  부분적으로  마모되었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지그시 감은 눈은

 

깊은 사색에 잠긴듯하다. 양쪽 어깨에 걸친(通肩) 옷자락(法衣)은 U자형

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오

른손은 손바닥을 펴 어깨높이에서 손가락이  위로  향하게 하였고 (施無

畏印), 왼손은 허리춤에서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펴고 있다(與願印).  즉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풀어주고,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을  각각 상징한다. 재경  이탁기동기는 이 불상을  바로세우기위하여,

김해시청,정토원등과 예전 상의한바 있다. 글쓴이도 이것을 바로세우는

것이 노대통령과 봉하를 더욱 바르게하는길 이란 생각으로 이날 정토원

선진규(宣晋奎77세)
원장 을 만나 ,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상의 코저 하였

으나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하였다. 
언젠가는  이곳  봉화산 마애불이

제자리  서는날을  기대해본다.


 

봉화산을 내려와 다시 한번 묘역을 돌아본 후 <추모의 집>에 도착을 했

다, 입구 밖에는 노대통령의 여러 모습의 사진들이 시선을 끌게 했고 안

에는 대통령 관련 유품과 사진,기록물과 영상물을 볼수있는.  대통령 기

념관이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생전의 대통령 모습을 보여주는곳

이었다.
영상물을 보노라면  마치 살아서 친근감 있게  대해주는  분위기

였고 특히 전국에서 봉하 마을을 찾아온 관람객들 앞에서 폭소를 자아내

게 하는 특유의 연설을 마친 후 “이제 저의 공연을 마치겠습니다”라면서

조크를 던지고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모습은  역시 국민들

을  감동으로 몰입시키는 명장면의  영상물 이었다.



그곳을 지나  봉하마을  정미소  밑의  논으로  가니 <가을의전설> 현장

이 나온다.  
영농법인 봉하마을’(대표 김정호;전청와대 비서관) 이  뿌린

씨앗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실루엣 사진바탕

으로 봉하마을과
인연이 깊은 김은곤 화백과 동료 화백 3명이 하루 동안 

 

밀가루로  밑그림을  그렸다. 글자는 ‘연각재(緣刻齋)’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써서 사이트에 올린 글을
디자인 하였다.  봉하마을  부녀회원과

자원봉사자 30여명이 지난 6월17일부터 19일까지 봉하마을 앞 논(2구역

 

6000㎡)에  정성드려 ,밑 그림에다  밀짚모자를 쓴  노 전 대통령의 모습

(2980㎡)과  ‘내마음속 대통령’(2980㎡)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모심기를

했다. 바탕은 진백벼(품종)에 얼굴·글은 자색벼이다.

 


노 전 대통령 얼굴이 들판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엔  붓

글씨 신영복체로 ‘사람사는 세상’이란  벼글씨를 새겼었다.
봉하들판 벼글

씨 등장
배경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09년 전남 장성군 남면 분향리

에  사는 구재상씨가 자신의 논(1만4700㎡)에 <사랑합니다 바보 대통령.

 

그립습니다, 바보 농민>이라는  글을 새기면서 시작됐다. 구씨는 혼자서

 

20일 동안 작업을 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영농법인 봉하 마을에서 2010

년부터 벼글씨를 썼다.
김정호 대표는 “내달 25일쯤이면  벼글씨를 쓴 벼

를 수확하게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이 고향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농촌

마을
만들기꿈을 이어  가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고  말 하였다. 또한


2009년도에는  첫 수확한 봉하 오리쌀,우렁이쌀을  노무현 대통령 영전

에 바치며 기도하였으며 ,
김정호대표는  묘비 앞에서 벅차 오르는 감정

으로 대성통곡 하였다고한다.
봉하쌀은  백양  동문들도 구입하기  운동

을 벌렸으며,  봉하장터  (http://shop.knowhow.or.kr)에서 
온라인 으로 

판매하고있다.

 

 

이르듯 <가을의 전설>의  유지(遺志)는  매년 계속 전설속에 이어 갈것

이며, 먼훗날 우리들의 후손들 까지도  <가을의 전설>로  남아  있을것

이다. 
마을을 지나 홀로  돌아 가는길에는  쓸쓸함을  아는듯 도로변에

줄줄이  세워져있든  빛바랜  노랑  팔랑개비 가 
한적함을  깨우려는듯

바람따라  더욱더  세차게 돌고 있었다.,,  윙윙...윙윙 ...
 
 
 
그날의   50장 컷은  <57동기회  자유계시판>에 올려져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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