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명문학교 개성고총동창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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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랑이 분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식)
 제목 :  다시 바랑이 분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식)
작성자 : 김영봉(57) / 2011-05-25

 
 
 
 
 
 
 
 
 
 
 
 
 
 
 
 
 
 
 
당신과    나란히
 
추모를   넘어 나눔과   연대의   정신으로
 
희망과    대안을   찾아가는     장으로 !!
 
2011. 5. 23 14:00  봉하마을 묘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식이  엄숙히  거행

되었다. 이날 따라  예년과  똑같이   내리는  비는  아직도  하늘이  슬프함을 말하것 

같다.
서거(逝去)당시  내렸든 하염 없는  비 .1주기에 내렸든 하염 없는 비, 2주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   내리는  비는  진종일   눈물로  대지를

적 신다 ...
 
 
유수  같은  세월이    어언  이년이나  지났건만 ...

대한민국 국민들에 사랑을 받은 유일한 대통령..
 
모든 국민이 좋아하는 대통령..
 
임기 후에도 여전히 국민들에 사랑을 받은 대통령..
 
인간적..
 
친근..
 
소통되고..
 
진실한 대통령... 
 
 
여기
 
대통령  이면서  시민  이고자  했고
 
정치인  이면서  정의  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  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   갔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소설가 ( 공지영)


재단 상임 운영위원인 문성근씨의 사회로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라는 구호아래
진행된   추모식에는 권양숙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을비롯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정세균,·박지원 의원과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
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준영 전남도지사,김두관 경남도지사, 김맹곤 김해시장
과 김정권·김태호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추도식은  전남도립
국악단의 추모공연에 이어 애국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거행됐다.

이어 강만길 전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이 추도사를 맡아 한국민주주의
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신념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였다.
<세월이   무상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가신지  어느덧 2주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런 하세는 온 세상이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안타깝고도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퇴임 후에도 이 나라의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고  따르던  ...
반세기 동안이나 국권을 빼앗겼다  되찾은 뒤에 또 문민독재와 군사독재를  겪어
야 했던 우리사회가 그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하고 나아가야야 할 당연한  방향은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의  민주주의   발전이며,  불행한  분단  민족사회 로서의
당면 과제인 평화통일 사업의 추진 그것이었습니다 ...참여정부 5년간의  실적이
역사로 등재될 때는, 이 기간에 국민 개개인의 권한이 신장되는 정치적 민주주의
가, 성장을 이루면서도 분배와 복지가 강화되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그   같은 정
치적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하여 만민평등을 지향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그리
고 사상의 자유가 확대된 문화적  민주주의가  크게 신장 되었음이   충분히 증명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
 
그 뿐만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위상과 업적을 말할 때 우리
역사 위에  영원히 빛날  또 하나의  위대한  치적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지난 어느 정권도 하지 못한 과거청산작업의 추진이 그것입니다.  참여정부 5년
간에  수립된  업적이,  그리고  그 역사가 각 부문에서 정체되거나  훼손 되거나
후퇴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그러나 역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소신 또한 확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걸어오신 길은,  그리고  재직기간에
이루어놓은 그 업적은 누가 무어라 해도 민족사적으로나 세계사 적으로  올바르
고도 떳떳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앞으로 성립될  올바른 역사노정에 선 정
권들에 의해 반드시 계승될 것이라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셨지만 님의 그 고귀한 뜻은,  그리고 그 빛나는 업적은 우리
역사 위에   영원히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도 소탈한
인품으로 비쳤던 님은   민족사 위에 영원히 사는 우리 대통령입니다. 모든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편히 잠드소서. 거듭 거듭  명복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박애림  양의  추도문이   이어졌다.
<대통령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수 있다
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셨
습니다.  떠나시던 날의 새벽길, 뒷모습조차 그랬습니다.
 
대통령님 ...

그렇게  외롭고 힘든  ‘바보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바보 노무현’을 보면
서 꿈을 키우고 행복해했던   저   같은  젊은이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만은 잊지 
마시고 조금 덜 외로워  하셨으면 합니다.    대통령님의  꿈은 우리의 꿈이 었습
니다. 우리와  같은  꿈을  꾸셨습니다. 대통령님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었고,
대통령님의 고민과 좌절은  우리의   아픔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나신 뒤 우
리는  꿈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과  함께  같은 꿈을 꿀 수  있던 그때가 더욱 간절하고  그립습
니다.  대통령님  이제 우리가  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이 없는  빈저리    또 다른
노무현이  되어  그   자리에 서있겠습니다.  대통령님이 가시려던 길, 우리가 걷
겠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하겠습니다.  투표도 꼭
하겠습니다.

투박한  목소리로  부르시던  상록수와  아침 이슬처럼 그렇게 살겠습니다. 특권
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역사를  만들겠습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
이라는 아름다운 상식을 지켜내겠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겠
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5월이 왔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흐릅니다.
그러나  슬퍼하지만은  않겠습니다.  슬픔을  딛고, 눈물을  참으면서,  대통령님
이 그토록 꿈꾸시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 가겠습니다>
(추도문을    낭독하게 된   계기는  노무현재단   부산 지역위원회가 월초 주관한 ‘
 대학생  봉하캠프’에 참가한 게 인연이 됐다)

이어 공식 추모영상 상영, 건호씨의 유족대표 인사말,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장
의  추모노래 등  순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   이날  슬픈 비가내리는  가운데  소프라노 정은숙 (63·전 국립오페라 단장)
세종대  성악과 교수가  추모노래를  불러 참배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김진경 글. 윤민석곡. 정은숙노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만이 아름다운 밤에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흐르는 피로 하나 되는 때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상처에 입 맞추느니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이어 추도식 마지막 식순으로 올해가 '희망과 다짐의 해'라는 의미를 담아 2천11
마리의  나비를  날려  보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으로 식순을  마무
리했다.허얼헐  ... 허얼훨  ... 허얼훨...   님 의  꿈  나비가 되어 다시 날아 올랐다..
 
식을  마친  참배객들은  전원 노무현 대통령  묘소로 이동하여, 한송이의 국화꽃
을  들고  즐을이어  질서 정연하게  고인의   영전에   헌화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서거  2주기를  맞아  <노무현재단>과  <봉하재단>은 5월한달 을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추모 문화재와  전시회,학술심포지움증 등의 
다양한 추모행사를 열었다.지난 5월1일 열렸든 고유제(告由祭)를 시작으로 11일
학술 심포지움 "노무현의 꿈,그리고 그 현재적의미" (국회 헌정기념관)12일-23일
전시회 "바보 노무현을 만나다"(인사동서울미술관)21일 추모공연 Power ToThe
People 2011"(서울광장)김재동의 토크 콘스트(봉하)22일 추모문화제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와"  (봉하) 23일 2주기 추도식(봉하)등의   추모 행사가  개최 되었다. 
이밖에 부산,광주,대전,창원,인천,제주,고양등에서 제단 지역위원회와  추모 위원
회가 주체  하는 각종 추모행사가 열려 수만의  인파가   5월 한달을  노랗게 물들
였었다.
 
5/23일  아침 동창회에서  마련한  버스로  봉하마을 로 향 하였다. 재경  동창회
도 마찬가지로 1대의 버스를 대절하여 내려가 동문들과 합류하였다.
부산에서는 33회 고참선배님을 위시하여.48회, 50회.53회,55회 선배님들이 축
을이루었고   57동기는  조춘호,임홍철,김영봉 이 참석하였고, 재경  57동기 로는
이탁희,김득성 ,문준석이 참가 하였다. 추모식장에 도착하니 별도로  오신 윤광웅
(48회; 전 국방장관), 차의환 (53회;전 청와대 수석비서관)오정의(54회; 전감사원
사무국장) 김정문(54회 ;전동창회장) 이재곤 (55회; 총동창회회장),  이남두(55회;
두산엔진 부회장),조영동 (55회;전 국정홍보처장)선배의  모습과 김승수 개성고등
학교장 이 보이며, 후배로는 홍경태(61회; 전 청와대 행정관),유대희(59회; 총동창
회 사무국장), 박남태(64회)이종철  (65회;총동창 문화부장), 김진호(65회;(총동창
회 체육부장) 등이  보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끝줄 뒤에  백양 동문들
은  모두 함께  모여,  의식을   끝까지  지켜  보았다.
 
이날 봉하마을 초입부터 노대통령 묘역까지 가는  800m 길  에는  노란 바람개비
와추모 글귀가 새겨진 플랜 카드와 줄에  매어진 노란 리본의 글귀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부엉이 바위, 잔디 동산에는 수많은 인파가 경건한  마음으로  식을  지켜
보기도 하였다.  봉하로  연신  들어오는  우산 과 비옷 행렬은 게속줄을 잇고있으
며, 이날만  약  5만의  참배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최근 봉하를 찾는 방문객들은
평일엔  1만명,  주말에는  2만명이   찾는다고  한다.    비옷을  입고 어린 아들과 
함께 멀리 강원도  춘천에서 온  어느 부부 에게,   이렇게 비오는날 어떻게그렇게
도  먼곳에서   왔느냐 하니 ....
< 자식들 의  미래를 위해서 > 왔다고 한다. 또한  당신이 더욱그립다 한다...

또한 <추모의 집> 로비 에는 지난 5/21일 노무현 전대통령 흉상 제막식이 열였다.
'대지의 아들 노무현' 테마로 한 이 흉상은 노 전 대통령  묘역의  박석을 디자
인했던   임옥상(61) 화백이  제작을 맡았다. 4억원의 제작비용은  임 화백의 사재
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제작에 나서 8개월여만에  완성됐다.
폭 5m의 흉상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노 전대통령이 대지(땅)과 하나가 된  모습
을 하고 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한국의 험난한  근현대
사를 백두대간  산세(山勢)로  표현했다. 추모객 들의 눈높이와  맞추고   아이들이
걸터앉은채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흉상 전체의 높이는 성인키보다 조금 큰 2m로 
했으며 황토의 질감과 색깔을 살리기 위해 무쇠주물로 만들었다  임옥상   화백은
보통 위인들의 기념상들은 일반인들은 우러러봐야 하는 높은 위치에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재임당시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분이어서   흉상도 
그에  맞춰  제작했다" 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땅의 아들'  입니다.
그를  처음  봤을때도   그랬고,  대통령이  됐을때도
그랬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원형으로   태어나  원형으로 살고
원형으로  돌아간 사람.
그는  흙이고  땅이고  대지입니다"
2011.5.  임옥상

이와 함께 비공개사진 20여점도 공개되어  전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특히
시장통 에서 장기를 두는 모습과 2002년 대선 당시  의자에 앉아 깊이 홀로 사색
에  잠겨 있는 모습 등은  추모객 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감동을  심어 주기도
했다. 또한  김경수  봉하 재단 사무국장에  의하면  외롭게  있는  사저(私邸)는  
권양숙   여사가  사저  인근에  새 주택을  마련하여   2-3년후  일반 에게  공개 
한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식을 마치고 봉화마을안 정미소가 있는 광장앞에는<개성고등학교>라 적힌 부츠
가  마련  되어있어  많은  동문들이  모여 있었다.

그 뒤로  펼쳐진  봉하의  기름진 들판에는  참백객의  차량들이  줄을이어 들판을 
가로 질러  돌아가고  있었고 ,    걸어서  돌아가는   봉하의   길에는 바람이 불면
밀리지 아니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더 빨리돌아 자신을 아름답게 나타내는 노란 
팔랭개비 가  바랑에  힘차게  돌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    다시  바람이  분다   ...   눈물이    난다   ... 


문화 부장님  사진이 옆으로  올려지지 않는군요... 
노 전 대총령의 미공개사진 9장 포함 40장이
57 홈페이지 자유 계시판에 글과 함께 올려져 있읍니다
필요하시면  글과  함께 자료로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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