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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다이사건' 학생 10명,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
 제목 :  부산 '노다이사건' 학생 10명,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16-08-12



부산 '노다이사건' 학생 10명, 항일독립운동가로 인정
    기사등록 일시 [2016-08-11 12:00:00]    

 서울=뉴시스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하고 항일시위를 전개한 학생들의 전체명단이 수록된 '퇴학생학적부' 등 총 12권을 처음으로 발굴·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19401123일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한 약 1000명의 학적부 모습.(사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제공) 2016.08.11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19401123일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한 10명의 명단이 추가로 확인돼 항일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게 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하고 항일시위를 전개한 학생들의 전체명단이 수록된 '퇴학생학적부' 등 총 12권을 처음으로 발굴·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 학적부들은 부산지역교육청 등에서 이관된 것으로 국가기록원은 열람서비스를 위한 목록작성 과정에서 '퇴학이유'란에 관련 사실이 기록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른바 '노다이 사건'으로 알려져온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29년 광주학생의거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일제 말기 항일학생운동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일제는 당시 학교병영화 정책을 시행하고,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경남지역 일본인 학생 및 조선인 학생을 동원해 무장행군, 수류탄던지기 등 15종목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심판장을 맡은 경남지구 위수사령관 대좌 노다이(乃台)가 일본인 학생들의 우승을 위해 편파운영을 하며 조선인 학생들을 모욕하자 항일시위운동으로 발전했다.

 

당시 항일시위는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의 전체학생 약 1000명이 참여한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이번 학적부를 통해 정확한 참여인원이 총 1021명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시스】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부산항일학생의거에 참여하고 항일시위를 전개한 학생들의 전체명단이 수록된 '퇴학생학적부' 등 총 12권을 처음으로 발굴·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1940년 11월 23일 부산항일학생의거 참여자의 학적부에 명기된 퇴학이유. "15년(1940년) 11월 23일 경상남도 체육협회 주최 제2회 국방경기회(國防競技會)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소리치고, 동래중학 생도와 본교 생도 등 다수와 함께 배속장교 노다이(乃台) 대좌 관사(邸內)에 침입하여 돌을 던지고(投石) 유리창(窓硝子)을 파괴하며, 불온한 언사(言辭)로 조롱하고 혹은 다른 사람을 선동(煽動)하는 등의 행위로 검사국(檢事局)에 보내짐"이라고 기재돼 있다. (사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제공) 2016.08.11 


  퇴학 등 징계를 받은 학생은 총 83명으로, 대부분 3~5학년 고학년생으로 밝혀졌다. 당시 고학년생들이 시위를 보수동, 광복동 일대 거리시위를 주도하고 심야에 노다이 대좌 가택을 습격한 사실도 학적부에 기재된 징계내용 분석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징계를 받은 83명 중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10명이 새롭게 확인됐으며 학생별 처벌 내용도 기록으로 증거로 남길 수 있게 됐다.

 

새로 항일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게 된 10명은 동래고등보통학교의 이칠영(4학년·정학강우중(3학년·정학), 부산제2공립상업학교의 이종선(4학년·정학), 김광호·장석규·최대진·최우직(이상 4학년·견책), 이장춘(4학년·훈계), 이태환·권기화(이상 1학년·훈계)이다.

 

이상진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발굴된 학적부는 불굴의 항일운동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항일기록물로 보존하면서 살아계신 항일학생의거 참가자 또는 후손, 학술연구자들에게 원본열람은 물론 항일운동규명을 위한 학술자료로 적극 제공 하겠다."고 말했다.






1940년 부산 항일학생운동 참가자 10명 새로 찾았다

송고시간 | 2016/08/11 12:00


동래고·개성고 소속국가기록원, 퇴학생학적부 공개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 부산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퇴학당한 학생 10명의 명단이 새롭게 발견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당시 항일학생운동에 참가한 학생 명단이 담긴 '퇴학생학적부' 등 자료 12점을 최초로 발굴해 공개했다고 11일 밝혔다.

부산항일학생의거는 19401123,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 35학년생 121명이 참가한 운동이다.

 

  일제는 당시 '학교병영화' 정책의 하나로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경남 일대 조선인·일본인 학생을 동원해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심판장을 맡은 일본인 위수사령관이 일본인이 우승하도록 편파운영을 하고 조선인 학생을 모욕하자 항일운동으로 번졌다.

그 결과 200여 명이 검거돼 14명은 징역 8개월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가기록원은 "부산항일학생의거는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부산에서, 민족 말살 정책이 벌어졌던 일제 말기에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이 사건은 그동안 신문기사나 참가자들의 회고록으로 단편적으로 알려졌을 뿐, 전체 명단과 처벌 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학적부 전체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퇴학생학적부' 등은 부산지역 교육청 등에서 이관된 것들로, 목록 작성 과정에서 '퇴학이유' 부분에 항일운동 관련 사실이 적힌 것이 확인돼 빛을 보게 됐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퇴학 등 징계를 받은 학생은 83명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10명이 새롭게 확인됐다.

10명은 이칠영·강우중(동래고등보통학교), 이종선·김광호·장석규·최대진·최우직·이장춘·이태환·권기화(부산제2공립상업학교)씨다.

 

  국가기록원은 "발견된 학적부를 항일기록물로 보존하고, 앞으로 항일운동 규명을 위한 학술자료로 적극 활용토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19401123일 부산항일학생의거 참여자의 학적부에 퇴학이유 명기“15(1940) 1123일 경상남도 체육협회 주최 제2회 국방경기회(國防競技會) 심판이 불공평하다고 소리치고, 동래중학 생도와 본교 생도 등 다수와 함께 배속장교 노다이(乃台) 대좌 관사(邸內)에 침입하여 돌을 던지고(投石) 유리창(窓硝子)을 파괴하며, 불온한 언사(言辭)로 조롱하고 혹은 다른 사람을 선동(煽動)하는 등의 행위로 검사국(檢事局)에 보내짐

ts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11 12: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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