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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32회 전병철 동창회고문 대통령 표창받다
 제목 :  (펌) 32회 전병철 동창회고문 대통령 표창받다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04-08-15

광복 59돌 항일지사 2명 열아홉 기개로 식민통치 맞서 일제 경제수탈 온몸으로 저항 #부산 전병철 옹 釜商生 규합해 울산비행장 노역 거부-모진 고문 뒤 옥고…내일 대통령표창 "식민지 하에서 쌀밥 먹는 것보다 조선이 독립되어 보리밥을 먹는 것이 좋겠다." 일제 강점기 지금의 부산상고 학생들을 규합해 울산비행장 사건을 주도한 공적으로 광복절 59주년을 맞아 15일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는 전병철(79·부산 연제구 연산동·사진) 할아버지는 경찰의 고문 속에서 이렇게 외쳤다. 당시 나이 열아홉. 독립투사의 핏줄이 흐르는 것도 아니었고 항일투쟁 정신이 남달랐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전 할아버지는 "일제치하 조선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라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전 할아버지가 부산이상(현 부산상고) 5학년이었던 1944년. 많은 학생들이 울산비행장 확장 공사와 도로 공사에 동원됐고 할당된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에 매달려야 했다. 좁은 내무반에서 수십명이 생활하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한 것이 수개월. 하지만 군부와 학교측은 또다른 이유를 대며 더 많은 일을 시키려 했고 전 할아버지는 학생들을 규합, 태업을 이끌며 일제의 부당한 노역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그 일로 전 할아버지는 졸업 후 울산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고, 평소 반일 사상을 친구들에게 전파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라도 안 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때였다"며 "학생 모두가 항일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늘 죽도로 아이들의 머리를 때리던 교장 선생에게 "머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위고 급소인데 죽도로 제자 머리를 때리는 것은 애정이 부족한 탓 아닙니까"라고 말해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는 전 할아버지. 그는 "남북이 쪼개진 것도 모자라 요즘은 남남도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며 "조선 백성이 하나돼 일제 강점기를 이겨낸 통합정신을 이번 광복절에 되새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8월 14일자 국제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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