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 생가터에 알림판 세워졌다 |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20-01-23 |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 생가터에 알림판 세워졌다 박재혁 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을 맞이하여 ▲ 박재혁 의사 생가터 알림판 -박재혁의사 생가터 일림판을 찾은 이손녀 김경은 올해는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투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초로 성공한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의 행적을 기리는 알림판이 또 세워졌다. 박재혁 의사의 투탄 장소인 옛 부산경찰서에 이어 두 번째로 생가터에 세워졌다. 2012년 부산 시 동구청은 범일동 조방로 600여m를 박재혁 거리로 명명했다. 하지만 이곳은 박재혁 의사가 다녔을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살았던 생가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잘못 고증된 결과가 낳은 결과이다. 부산시 동구 범일동 가구거리 공용주차장(동구 범일동 183번지, 중앙대로 471- 10)이 실제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였다. 박재혁 의사는 부산에서 세 곳에 거주했 다. 태어난 1895년 5월부터 1919년 6월까지 범일동 183번지에, 중국에 있는 동 안인 1919년 6월부터 1920년까지는 범일동 550번지에, 그리고 부산경찰서 투탄 을 전후로 하여 1920년부터 1923년까지 범일동 354번지에 살았다. 박재혁 의사가 1921년 5월 11일 순국하였고, 중국 상해. 싱가포르 등에 1915(16 년) 이후에 활동하며 부산을 오고 갔기 때문에 현재 박재혁 거리를 조성한 범일 동 550번지보다 태어난 범일동 183번지가 실제의 생가터이다. 유가족인 김경은 이손녀의 요구를 동구청이 받아들여 처음으로 생가터에 알림 판을 세웠다. 알림판은 높이 1.8m 정도로 글자도 큼직하여 읽기도 시원하게 박 재혁 의사의 생애를 적었다. 국채보상운동, 동국역사책 등사 배부 운동, 비밀결 사 구세단 운동 그리고 부산경찰서 투탄과 옥중 순국에 대해 적혀있다. 그의 의거를 당시 일본 신문은 "부산 경찰서 투탄 사건은 천만의외라. 이야말로 동경 한 가운데에 투탄한 것과 같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만큼 일제는 박재 혁 의사의 의거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주차장 관리인은 알림판을 보고서야 자신이 일하는 곳이 박 의사의 생가터임을 알았다고 한다. 실상 큰 역사에 비해 지역사는 지역민도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 다. 박재혁 의사 독립운동 현장을 찾은 '양산통통마을' 회원들과 동행하여 처음 알림판을 본 유가족 김경은씨는 "생가터를 이제라도 알리게 되어 다행이다. 동 구청이 관심을 가져 고맙다. 정공단 인근에 살았던 박 의사와 친구들의 항일 독 립운동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박재혁 생가터는 범일동이지만 도로를 경계로 좌천동이다. 이 일대는 임란 때 구들이 살았던 부산 독립 의열의 거리이다. 가구거리 골목은 좌천동 이바구길 테마 벽화를 동구청에서 조성하여 볼 거리도 있다. 이 골목길 주변에 있는 박재혁의 친구인 최천택, 오재영(오택), 김영주, 왕치덕, 김작치, 백용수, 김병태 등의 생가터와 함께 항일운동 안내판이 세워져 야 할 것이다. 올해 박재혁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 박재혁 생가터 인근의 건물을 매입하여 부산 동구 독립 의열 운동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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