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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제목 :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작성자 : 김영봉(57) / 2016-01-22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굴곡진 삶을 살다간 이 시대의 지성 아! 신영복 교수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가는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길에 가시다.


이 시대의 아픔 영원한, 사색에 잠기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연대 ‘더불어 숲’을 꿈꾸다.

 

 

2014년 희귀 피부암 일종인 '악성 흑색종'을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다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향년 75세로 끝내 숨진 "이 시대의 지성'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1월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학교에서 유족과 지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청치인, 일반 시민 등 약 1천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었다 신영복 교수의 장례는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대학성당에서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공회대 교목실장인 김기석신부의 별세기도로 시작되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의 고인의 약력 낭독이어 한때 동료 교수였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조사에서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담론>을 써나가셨다"며 고인의 마지막 저서인 <담론>의 마지막 글귀인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는 문구를 소개하며 “선생님의 75년 삶 자체가 편의 강의이자 담론이다”며 “우리가 살아있는 한 긴 강의를 마치고 가시는 선생님이 정말 보고 싶을 것이다"고 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고민정 KBS 아나운서, 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추도사를 낭독 고인을 추모했으며, 특히 고인의 제자인 윤미연 서울여대 교수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고, 개인과 사회를 성찰하는 거울이 됐다"며 "살아가며 참된 어른의 말씀을 듣고 싶을 때 선생님이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울먹였다 또 영결식의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은 영결식에서 “우리가 신영복이라는 산을 가슴 속에 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정말 잘 키워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 정태춘씨는 추모곡 '떠나가는 배'로 고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하였으며, 유족 대표로 나선 신영배(고인의 친형)씨는 “무법의 시기에 홀로 감옥에서 20여년을 잘 견뎌준 것에 대해 (신교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으며,오후 1시쯤 고인이 즐겨 부르던 동요 '시냇물'을 모두 따라 부르며 마무리됐다. 이후 고인의 시신은 장의 차량에 운구 서울 시립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되었으며,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고(故) 신영복 교수의 영결식장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눈물로 가득 채워졌다. 영결식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곳곳에서 흐느끼는 추모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참석한 시민들은 “거목이신 신 교수가 우리들이 쉴 수 있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떠났다”며 “그의 향기는 후대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을 추모하러 빈소를 찾은 추모객들의 수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유시민 의원, 박원석 의원,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와 시민 등이 3일 동안 7,800명이 찾았다고 성공회대측은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님과 아들 지용씨(대학원생)가 있다.

 

'시대의 스승'으로 불린 신영복 교수는 1941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부친이 교장으로 근무하는 사택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성장기인 초등, 중학교 시절을 밀양에서 보낸 뒤 1959년 부산 상업고등학교(46회),1963년 서울대상과대학 경제학과,1965년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26세의 나이에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을 하던 중 1968년 군사독재 정권 때 독서 동아리 활동이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통일 혁명당사건으로 구속,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 1970년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한 환송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 무려 20년 2개월간 복역하다 1988년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 그 후 성공회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다 10년만인 1999년 김대중정권의 국민의 정부 들어서 사면 복권되어 정식 교수로 임명되어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25년간 강의, 2006년 정년퇴임 한 후 석좌교수로 활동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선생이 1988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며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인 대표작『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신영복의 시선으로 후기 근대사회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우리 인간이 당면한 문제적 상황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우려와 대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하나씩 들려주는 내용의 『담론』 그밖에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했었던 동양고전 수업을 바탕으로 쓰여진『강의』 또 선생님께서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적은 여행기 『더불어 숲』 ‘경향신문’에 연재된 저자가 직접 자신의 글씨가 있는 곳을 답사하고, 그 글씨가 쓰여진 유래와 글씨의 의미,그리고 글씨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변방을 찾아서』그가 단절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난 지 8년 만에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사색의 글 25편을 모은 『나무야 나무야』 등이 있으며 이런 선생의 삶과 철학, 마지막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그의 가르침이 담긴 그의 대표 도서 들은 선생의 별세소식이 전해지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최근작 ‘담론’ 등 모든 저서가 분야별 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첫 획을 너무 치켜 그었다고 해서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다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또 그 다음 글자의 실수는

그다음 글자로 만회자가 서로 기대게된다

(담론 중)

 

신 교수는 학자이자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신영복체, 어깨동무체 등으로 불리 우는 글씨체로도 유명했다. 20년간의 감옥에서 태어난 서민 정서가 담긴 소박하고 어수룩한 글씨체 연대체라는 그의 멋나는 그림 같은 서체는 전국적으로 남아있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대통령 묘역 비석 붉은색 받침판에 새겨진 노무현 대통령 어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란 글귀를 비롯하여 부산 민주공원 내의 민주항쟁 기념관,부산대 건설관 앞 ‘민주주의 신 새벽 여기서 시작되다, 표석 1995년 서울시에 기증하여 시장실에 걸려있는 서울 글체, 벽초 홍명희 문학관, 강능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현판,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건물현판 ‘한울삶, 청계천 ‘전태일거리 동판, 신영복과 함께하는 모임 ‘더불어 숲, 서울의 유명한 추어탕집 ‘용금옥,의 간판 ‘뉴스타파,의 제호, 해남 송지초등 서정 분교에 있는 ‘꿈을 담은 도서관, 암 투병 중 이화여고를 비롯한 전국 15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요청하여 2015. 11월 서울 중구 성 프란치스코 성당 위안부 소녀상 표석에 쓴 “고등학생이 함께 세우는 평화비” 마지막 유작으로 남은 ‘사람중심 민생중심 의회’라는 경기도의회 현판 글씨 등 이루 말 할 수없이 많다 또 삶을 사색하고 뒤돌아보게 하는 잠언 형식의 글을 서화와 함께 엮은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이란 쇠귀체 글씨는 2006년 2월 출시되어 주류 업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킨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의 소주 제 품명의 글자체디자인에 활용했다.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워낙 이름이 놓고 존경받는 분이라 신 교수님이 술 이름에 자신의 글과 서체를 과연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신교수는 소주는 서민이 기쁘거나 슬플 때 자주 찾는 술이란 이유에서 흔쾌이 허락했고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저작권료도 극구 사양했으나 결국 두산주류는 저작권료 대신 그가 재직중인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처음처럼》 중에서

 

신교수는 2006년 마지막 수업에서 “사람이 일생동안 참 멀리 여행을 하는데, 가장 먼 여행이 어디냐.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면서 “각박한 언어도 제시되어선 안 되고 더 큰 인간적인 애정 속에서 융화될 때 진정한 담론이 되고 진정한 의미의 사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뿌리는 사람”이라면서 “나무가 숲이 되는 방법 그리고 사람이 진정 개인이 아닌 숲의 사람이 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으며 “나무는 큰 나무도 있지만 작은 나무, 결함도 많은 나무가 있다. 하지만 숲은 모든 결함까지도 다 품는다. 그러니까 숲은 나무의 완성이다. 어느 개인을 똑똑하게 좋은 나무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 개인 숲속에서 아름답게 만다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숲이다”라고 생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관계’의 구축이 잘 드러난 대목을 .설명했다. 이어 “사회 변화 쉽지 않다. 다만, 변화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적이고 아름답고 보람 있다면 그 자체로서 훌륭한 사회”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어디에 있던지 꽃을 피우기보다는, 곳곳에 씨를 묻는 노력들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순은 뿌리 부분이 마디가 짧다. 올라갈수록 마디가 점점 길어진다. 짧은 마디가 만들어내는 강고한 힘이 대나무의 큰 키를 지탱한다. 죽순은 뿌리에서 돋아난다. 누가 심어주는 게 아니다. 깜깜한 땅속에서 자기를 뻗어가야 하는 뿌리는 아예 마디 투성이다. 그리고 이 죽전, 대나무밭의 모든 뿌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홍수 때에도 언덕을 지킬 수 있다. 함께”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시대의 고난과 고통에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작고 소박한 대상에 삶의 본질을 배움의 여정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을 한권의 책으로, 또는 글씨와 그림으로 담아 경쟁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이 시대에 경종의 메시지를 던졌으며 , 또 그가 창안한 어깨 동무체는 같이 아파하고 , 호흡하는 사람과 사람의 ‘더불어 사는 삶’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신영복 교수의 ,장례,및 조문에는 많은 백양 동문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양원석 12대 총동창회장,윤청목 전 재경 동창회장을 비롯한 46회 동문 30여명과 이원수(38회 만화가)동문외
20여영이 고인의 빈소를 다녀갔다.한편 선생은 하직 하시기 석달전 백양동창회, 백양 장학회의 서체와 백양 역사관 현판을 기증 하셨다

  (제102호 백양 동창회 회보 원고 기고 글)

 

  백양 마라톤 홈 페이지(cafe.daum.net/bypkq) 에  13장의  photo 가 올려져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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