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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헌(58회) 온요양병원장 성공한 의사 CEO “노화 관리체계 정립이 다음 목표”
 제목 :  김동헌(58회) 온요양병원장 성공한 의사 CEO “노화 관리체계 정립이 다음 목표”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19-04-10



성공한 의사 CEO “노화 관리체계 정립이 다음 목표”

김동헌(58회) 온요양병원장



- 부산대병원 등 3개 원장 이력

- 대수술만 1만 건, 논문 130편

- 국제경영학 석사학위도 취득

- 임상장수·노화 연구소 설립해

- 건강한 100세 시대 만들고파


  33년간 1만여 건의 굵직한 수술을 해 온 외과 전문의인 ‘그’는 참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86년 부산대병원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의

무담당관, 부산시 의사회 학술이사, 부산대 교수회 부회장, 전국의과대학 교수

협의회 부회장, APEC(2005년) 의료단 진료본부장을 지냈다. 여기다 부산대병

원장, 부산시립의료원장, 국립 부산보훈병원장 등 3개 의료기관의 병원장을 역

임하면서 성공한 의사 CEO로 불린다. 지난 2월, 33년의 교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그가 또다시 새 출발을 선언했다.

     

 김동헌 온요양병원장은 “후배 의료진과 함께 임상 장수·노화 연구소를 설립해

건강한 100세 시대를 만드는 데 남은 인생을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진 기자



  주인공은 ‘일 복 많은 사람’이라고 자평하는 김동헌(65) 온요양병원장이다. 지난

달 온요양병원 개원 1주년을 맞아 취임한 김 원장은 “평생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로 노화의 관리체계를 학문적 베이스에서 정립하고 싶다”고 조심

스레 운을 뗐다. 온요양병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운명 같다는 그는

울산시 울주군에서 6녀 1남의 막내로 태어났다. 김 원장은 “어머니가 41세 때

나를 낳았는데, 당시에 또래와 비교하면 굉장히 나이 든 어머니셨다. 자연스럽

게 노인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웃음). 할머니 무르팍에서 다 배웠다고 할 만

큼 늘 주변에 어른들이 계셨다”고 말했다.


그  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2006년부터 3년 임기를 보낸 부산대학교

제22대 병원장 시절이다. 재직기간 양산부산대병원의 건축과 개원, 부산지역

암센터의 개원, 외상센터의 유치, 공공의료 정보화사업 유치, 복지동 건립 등을

마쳤다. 그는 “눈코 뜰 새 없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명색이 병원장인데 3년

간 도장만 찍다가 갈 순 없지 않습니까. 그전부터 부산대병원에서 여러 보직을

맡다 보니 경영을 알아야겠다 싶어 미리 공부를 했던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

다.”

  김 원장은 다른 의과대 교수와는 달리 앞서 2000년 부산대 경영대학원 최고 경

영자 과정을 거치면서 조직경영을 공부했고, 의료경영 최고 경영자 과정 주임

교수를 맡아 의료경영을 터득했다. 이후 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 글로벌경영과

정에서 경영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국제경영학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이

같은 경험과 노력이 부산대병원장 임기 때 제대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임기가 끝나기 무섭게 부산시립의료원장 제안이 들어왔다. “막상 의료원에 가

보니 직원들 사기는 물론 CT 등 병원장비가 형편없더군요. 아무리 공공의료지

만 이건 아니다 싶어 예산을 확보하려고 부산시, 부산시의회 다 다녀봐도 돈 나

올 데가 없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보건복지부로 가서 예산을 따왔습니다.

이후 의료원에 있던 오래된 장비는 거의 국비로 바꾸고 나왔습니다. 허허.” 다

시 3년 뒤, 부산대병원장 시절 위암 수술을 돕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했던 보훈

병원과의 인연으로 내친김에 부산보훈병원까지 맡았다.


   병원 경영뿐 아니라 외과의사로서도 쉼 없이 달려왔다. 1만 건 이상의 대수술을

시행했고, 교수로서 대한위암학회장 대한외과학회장을 맡으며 130여 편의 연구

논문(80여 편 SCI)을 썼다. 위식도외과학, 외과학총론, 외과학, 위암과 위장관

질환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보건복지부 장관, 국무총리, 부산시장 표창장 및 각

종 감사장과 공로패를 수상했다.



  부산상고에서 공부하면서 상과대학 진학을 생각했던 그는 위암에 걸린 아버지

의 주치의로 고 장기려 박사를 만난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장기려 박사님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막연히 그분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자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지요. 온요

양병원에서 후배 의료진과 함께 임상 장수·노화 연구소 설립 등을 추진해 건강

한 100세 시대를 만드는 데 남은 인생을 쏟아붓고 싶습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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