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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최종근(30회) 선생 별세
 제목 :  독립유공자 최종근(30회) 선생 별세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17-09-15





독립유공자 최종근(30) 선생

(: 최철영-54/시인)

 



독립유공자 최종근 선생이 별세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전 고인의 업적을 되새기고 그 유지를 이어받들

고자 선생의 독립투쟁 활동을 간략하게 요약한다.

 

밀양이 고향인 최종근 선생은 19401123일 재학 3학년 시절 노

다이 사건(부산항일학생의거)때 선배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시위를 하

였으며, 이듬해 3월 동급생 감득실, 정정실, 김계호, 김병철, 노창현

등 다섯 명과 육독회’(六獨會)라는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하숙집 주

위 노동자들과 이웃, 후배들에게 일본의 침탈의 부당성을 알려나갔다.


42년 졸업해 조선운송주식회사(현재 대한통운)에 취직했던 선생은 2

년 뒤 밀양상남면사무소 면서기로 옮겼다. 그 당시 선생은 종이에 손

으로 일제에 맞서서 싸우자는 내용을 쓴 전단지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좋은 직장을 나와서 농촌으로 들어간 건 농민들을 규

합하기 위한 뜻이었다는 그는 넉 달 동안 전단지를 만들어서 밤에 뜻

있는 농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해방을 목전이던 45110일 부산에 조선운송주식회사에 육

독회 회원들을 만나러 간 그는 진해헌병대에 붙잡히고 만다. 진해경찰

서로 인계됐던 그는 한 달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거꾸로 매달아서 입과 코에 물을 붓고, 죽도록 두드려 맞기도 했지.

순사 중에는 조선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도 다 잊어버렸다.”


한 달 뒤 마산형무소에 수감된 그의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815

일 해방을 맞으면서 다음날 풀려났다. 그를 붙잡아 넣었던 치안유지법

은 국가보안법으로 변해 민주화운동을 했던 둘째아들 최준영(53)씨를

부림사건으로 옭아매 옥고를 치르게 했다.



해방을 맞았지만 선생은 1년 동안 집에 붙잡혀 있다 밀양예림초교를

시작으로 모교 부산상고에서도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독립유공자 신고기간이 있을 때도 자식의 권유에 아서라, 그냥

두어라 그 때 그 시절 우리 조선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했

었다.”며 지내다 결국 8·15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200583일 대

통령표창으로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선생의 아들이자 역시 동문인 최철영(54) 시인의 시를 통해 그 마음

을 헤아려본다.

 

  

  

자랑스런 나의 아버지

 

진실로, 나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우리 조선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 한마디 말이다.

 

언젠가 독립유공자 일제신고 기간이 있었을 때 아버지 이제 그 사실

을 알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신고하시어 이름이라도 올리도

록 하시지요.”

 

아서라, 그냥 두어라 그 때 그 시절 우리 조선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했었다.”

 

이제 당신의 나이도 팔순이 넘어 얼마나 이 세상에 머무를수 있을지

 

모두들 저 혼자만은 생각하는 이기가 가득한 이 세상에 나라를 위하여

그 숭고한 애국심을 후세에 길이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

 



참조 : 20058월 경남도민일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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