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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미래로 100년] 못다 한 '반쪽기림' 잊힌 함성 깨우자
 제목 :  [3·1운동 100년, 미래로 100년] 못다 한 '반쪽기림' 잊힌 함성 깨우자
작성자 : 동창회사무국 / 2019-01-02





[3·1운동 100년, 미래로 100년]

못다 한 '반쪽기림' 잊힌 함성 깨우자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탄생한 최초의 개항장 부산은 일제 식민지배의 발판이

었다. 그만큼 일제의 찬탈과 억압은 악랄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산시민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더 격렬하게 저항했다. 백산상회로 대표되는 조직적인 항

일운동, 각계각층의 만세운동, 청년운동가와 부두노동자의 투쟁, 조선방직노동

자쟁의, 신간회 운동 등 다양한 항일 운동이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박재혁 열

사, 오재영(오택), 최천택 선생 등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인물들도 나타

났다.



이렇듯 부산은 항일운동의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본보 취재팀이 공훈전자사료관, 부산지역학생운동사 등 사료

를 확인한 결과, 부산지역 항일 운동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평가받는 부산진일

신여학교 독립만세운동, 동래 장날 독립만세운동, 범어사 학생 독립만세운동,

구포 장날 독립만세운동, 부산항일학생의거(일명 노다이 사건)에서 경찰에 연

행된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은 총 128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을 독립유공

자 공적조서에서 일일이 확인한 결과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사람은 절반을 겨우

넘은 수준인 66명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부울경 수백·수천 명 항일운동 
 
부산 128명 중 66명만 유공자 

저항정신의 뿌리 재조명해야



국가보훈처는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한 인물을 독립유공자에 서

훈하고 포상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독립 운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돼 적게는 4

개월, 많게는 2년 정도의 형량을 받고 옥고를 치른 분들이 아직도 정당한 대우

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 있는데도 서훈받지 못한 이유는 현행 포상 기준이 엄격

하기 때문이다. 광복회 관계자는 "부산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항일 운동에 참여한 인사조차 절반 정도밖에 독립유공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

실에 비추어보면 잊힌 독립유공자는 훨씬 많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김승 교수는 "부산은 해양 도시의 특성상 일제

식민지배에 전초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수탈의 역사도 깊다"며 "이

에 맞서 저항했던 우리 고장의 빛나는 항일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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